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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연(敢而然)/김영민,"동무와 연인", 배경 지식

아이러니의 긴장이 주는 역설적 통기(通氣) – 루 살로메의 '3의 구조'

by To Be or... Whatever 2025. 5. 18.
...여기에서도 3이라는 아이러니는 긴장이 주는 역설적 통기(通氣)속에서만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향유할 수 있었다.

김영민, 『 동무와 연인』, 72쪽, 한겨레출판(주),2008

 

1. 📍서문 – 둘은 닫히고, 셋은 열린다

 

그녀는 어떤 순간에도 '둘'이 되기를 거부했다. 사랑할 때도, 동행할 때도, 심지어 홀로 글을 쓸 때조차도. 루 살로메에게 관계란 닫힘이 아닌 열림의 구조였고, 그 형태는 언제나 '셋'이었다.

왜 굳이 셋이었을까? 왜 루 살로메는 끊임없이 제3자의 존재를 필요로 했을까? 단순한 감정 회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교한 패턴이었고, 일시적 도피로 보기엔 너무도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세상에는 사랑을 말하는 이들이 있고, 사랑을 배치하는 이들이 있다. 루 살로메는 분명 후자였다.


2. 🧠 구조로 존재하기 – '3'은 감정의 공간이자 거리다

'둘'이란 가장 폐쇄적인 수다. 연인과 연인, 나와 너, 동일화와 합일. 이 구조 안에서는 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소유하거나 소유당한다. 그러나 '셋'은 중심을 갖지 않는다. 완결되지 않고, 고정되지 않으며, 단일한 해석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루 살로메는 이 불안정한 안정 속에서만 진정으로 살아 숨쉬었다. 그녀에게 '셋'이란 단순한 회피 전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공기를 남기는 방식이었다.

 

By Hofatelier Elvira - https://www.elle.com/it/magazine/storie-di-donne/a29262677/lou-von-salome-film/, 퍼블릭 도메인,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84511314


 

3. 🧷 반복되는 3 

 

1) 니체 – 파울 레 – 살로메

🕊 첫 만남과 삼각의 시작

1882년 봄, 루 살로메는 파울 레(Paul Rée)를 통해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를 만났다.

당시 그녀는 스물한 살의 지적 열정으로 가득 찬 젊은이었고, 니체는 마흔에 가까운 원숙한 철학자였다. 니체는 이 매혹적인 젊은 여성의 지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곧 동반자적 사유의 삶을 함께하자는 제안을 건넸다. 그는 이 만남이 운명적이라 확신했고, 결국 두 차례 이상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하지만 살로메는 그의 청혼을 단호하게 거절했다고한다.

주목할 점은, 그녀가 니체와 단둘이 있는 상황 자체를 철저히 피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관계에는 언제나 파울 레라는 제3자가 존재했던 것이다.

 

🌀 바람개비 집이라는 이상

이 세 사람은 바람개비 모양의 공동 주거 형태를 상상하며 함께하는 삶을 꿈꾸었다.

'바람개비 집'이라는 구상은 중심 없이 회전하는 구조처럼, 세 사람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상징적 아이디어였다. 중심이 고정되지 않는 배치, 자유롭게 회전할 수 있는 구조, 누구도 소유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관계의 형태를 함께 상상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뮌헨 근교의 한 주거지를 후보지로 염두에 두고 있었고, 니체는 이 이상적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깊이 몰입하기도 했다.

비록 이 구상은 루 살로메의 청혼 거절과 관계 악화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들은 한동안 유럽 각지를 함께 여행하며 이상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험하기도 했다.

 

🔥 균열의 시작과 붕괴

이 삼자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우정과 사유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지만, 그 내부에는 갈수록 깊어지는 긴장과 좌절이 쌓여가고 있었다. 니체는 철학적 동반자 관계를 넘어선 깊은 감정적 기대를 품어버렸고, 루 살로메는 그것이 자신이 설정한 '거리와 구도'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꼈다. 파울 레가 중재자이자 관찰자로서 두 사람 사이의 완충 지대의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니체의 감정은 더욱 고조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관계의 섬세한 균형은 무너져갔다. 

 

결국 니체는 깊은 실망과 분노 끝에 살로메를 공격적으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트(Elisabeth Förster-Nietzsche)가 지인들과 교류한 서신에서도 루 살로메를 향한 노골적인 적대감이 드러나있는데, 엘리자베트는 루 살로메를 극도로 경멸했으며, 그녀가 니체의 정신적 파국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굳게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살로메를 "니체를 파멸시킨 여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니체가 죽고 난 후에, 엘리자베트가 주도적으로 편집한 니체의 전기 자료와 함께 이러한 서신들은 루 살로메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광범위하게 퍼뜨리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관계는 결국 공개적인 파탄에 이르렀고, 루 살로메는 파울 레와의 관계마저 정리하며 1년 남짓 지속된 이 삼각 구도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되었다.

 

🌱 관계 실험으로서의 '셋'

그러나 이 짧은 기간의 상호작용은 루 살로메의 사유와 인간관계 방식에 중요한 구조적 모델을 형성했다.

그녀는 이 경험을 통해 '셋'이 만들어내는 역동성과 통기(通氣)의 가능성,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제3자를 두는 것이 어떻게 긴장과 자율성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는지를 체험적으로 확인했다. 이후 그녀의 삶과 글쓰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삼각 구조는 바로 이 시기의 응축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릴케 – 안드레아스 – 살로메

🌠 정신적 동반자의 탄생

1897년, 루 살로메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를 만났다. 당시 릴케는 22세의 아직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었고, 살로메는 이미 36세의 지성인이자 저명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감정을 넘어서, 예술과 사유, 삶에 대한 깊은 열망을 공유하는 정신적 동반자 관계였다. 살로메는 릴케의 시적 재능을 날카롭게 알아보고 그의 문학적 길잡이가 되어주었으며, 릴케는 그녀에게 깊은 정신적 영향을 받으며 평생 잊지 못할 강렬한 감정적 유대를 느꼈다.

 

살로메는 그에게 ‘라이너(Rainer)’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본래 그의 이름은 '르네 카를 빌헬름 요한 요제프 릴케(René Karl Wilhelm Johann Josef Rilke)'였으나, 살로메는 보다 강인하고 독일적인 울림을 지닌 ‘라이너’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 명명 행위는 단순한 애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한 존재를 새롭게 호출하는 행위이자,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구성해준 출발점이었다. 실제로 릴케는 그의 편지에서 살로메와의 만남을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묘사했다.

 

🧱 계약적 결혼과 자유의 조건

하지만 이 관계는 단순히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다.

살로메는 이미 독일의 저명한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카를 안드레아스(Friedrich Carl Andreas)와 결혼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결혼은 일반적인 부부 관계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안드레아스는 오랜 시간 루 살로메에게 집요하게 구애했으며, 그녀가 거절하자 극단적인 행동까지 암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미혼 여성으로 홀로 생활하거나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은 수많은 편견과 제약에 부딪히기 쉬웠고, 루 살로메는 이러한 현실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수용하되, 그 안에 자신만의 엄격한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오히려 더 큰 자유를 확보하고자 했다. 이 결혼은 처음부터 성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았으며, 법적 결합 이외의 개인적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는 일종의 계약적 동맹이었다.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가 아닌 상태로 존재할 권리'를 확보한 셈이었다. 살로메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머물면서도, 그 누구의 소유물로도, 부속물로도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던 것이다.

 

 

🪞 관계를 조율하는 셋째의 존재

릴케와의 관계에서 이 결혼은 중요한 구조적 완충 장치로 작용했다. 살로메는 릴케와 깊은 정서적 연결을 맺고 있었지만, 안드레아스와의 결혼이라는 '셋째의 존재'가 그녀가 릴케에게 완전히 흡수되거나 종속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해주었다.

이 삼각 구조는 그녀가 신중하게 설정한 '자유의 거리'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틀이 되었으며, 릴케와의 관계 또한 그러한 적절한 거리 덕분에 단순한 연애 감정으로 소진되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었다.

 

 

🌿 감정의 거리와 지속의 윤리

살로메는 이 구조 속에서 사랑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파괴되지 않기 위한 방식으로 그것을 배치하고 유지했다.

그녀의 감정은 단절의 형태가 아니라, 정교한 배치의 형태로 존재했다.

 

 

3) 그녀 – 독자 – 대상 세계

✒️ 고백이 아닌 구조

글을 쓸 때조차 루 살로메는 단순한 1인칭 고백자가 되기를 거부했다.

일기를 써도 그것이 곧바로 자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장이 되지 않았고, 철학적 논문을 써도 단정적 주장보다는 열린 질문과 사유의 여백을 남겨두었다. 그녀의 글에는 항상 독자를 의식하는 섬세한 시선이 존재했고, 그 시선은 결코 대상에 직접적으로 도달하지 않았다.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여정이 되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 비대칭의 삼각 구조

살로메의 글쓰기에서 절대적 중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자, 그것을 읽는 자, 그리고 글이 겨냥하는 대상은 항상 일정한 긴장과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비추고 있다. 어떤 단정적인 서술도, 강압적인 정서적 압박도 찾아볼 수 없다. 말하는 이는 자기를 완전히 폭로하지 않고, 독자는 저자의 내면을 무단으로 침입하지 못하며, 대상은 오히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다층적으로 조명된다.

 

🧭 글쓰기의 윤리로서의 거리두기

이 삼각 구도는 단지 문체의 특징이나 기술적 장치가 아니라, 그녀의 근본적인 세계관이자 관계철학의 자연스러운 연장이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관계를 설계하는 데 주력했다. 이 '셋'의 원리는 그녀의 글쓰기 안에서도 일관되게 반복되었다.

 

루 살로메에게 글쓰기는 사유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기 위치를 섬세하게 지켜내는 전략이었고, 타자와의 적절한 거리를 신중하게 조율하는 윤리적 실천이었다.


 

4. 🌀 숨 쉴 틈으로서의 삼각

 

 감정의 완충 장치로서의 '셋'

'셋'은 그녀에게 감정의 안전지대였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요한 거리였다.

루 살로메는 단순히 가까워지는 대신,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를 섬세하게 조정했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정서적으로 완전히 흡수되지 않기 위해 고정된 자리를 의식적으로 피했고, 항상 관찰자이자 참여자라는 이중적 위치를 유지했다.

 

'거리'의 역설적 친밀성

그 거리를 통해서만 그녀는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직접적으로 가까워지는 말보다, 적절히 돌아서 있는 구도가 오히려 진실을 더 오래, 더 깊이 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정면의 직접적 언어보다는 비켜선 형식, 정서의 폭발적 표현보다는 세심한 리듬의 조율을 선택했다.

그녀에게 '셋'이란 자유를 제한하는 구속이 아니라, 존재를 온전히 유지시키는 최소한의 필수적 공간이었다.


 

5. 📌 결론 – 셋은 구조이자 의지다

 

 사랑이 아니라 배치

루 살로메에게 진정으로 중요했던 것은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배치였다.

그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신중하게 구성했고, 존재를 설명하기보다는 의미 있게 배치했다.

사랑한다는 말 자체보다,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라는 위치의 문제가 그녀에게는 더욱 근본적이고 절실한 물음이었다.

 

 '3'이라는 삶의 원리

'셋'의 구조는 그녀의 핵심적인 삶의 철학이었고, 그 적절한 거리 속에서만 진정한 관계는 지속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삼각관계의 우연한 반복이 아니라, 삶의 긴장을 섬세하게 조절하는 도형적 원리였다.

사랑과 자유, 관계와 자율성은 그녀에게 두 개체가 닫혀서 만나는 형태로는 결코 온전히 지속될 수 없었다.

 

오직 셋이라는 구조, 오직 그 사이의 미묘한 , 오직 끊임없는 위치의 이동 속에서만 그녀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닫히지 않고 굳지 않기 위해

이동하는 삶의 구조를 세우고 그 미묘한 틈을 뚫어낸 그녀의 삶이 이 문장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사랑은 둘을 만든다. 그러나 자유는 셋을 요구한다."


 

 

📝 참고로 읽는 문화적 맥락: 이름 짓기와 주체의 탄생

 

루 살로메가 릴케에게 '라이너(Rainer)'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건은 단순한 애칭의 차원을 넘는다. 그것은 일종의 **정체성의 재명명(naming as transformation)**이자, 남성의 자아를 여성의 시선과 언어로 다시 탄생시키는 행위였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곧 대상에 대한 인식과 위치 부여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며, 루 살로메는 이 과정을 통해 릴케를 시인으로서 새롭게 호명했다. 릴케는 이 이름을 받아들였고, 그 이후 자신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라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는 단지 별명이 아니라, 시적 자아의 구조 변화를 뜻한다.

영국과 유럽 문화에서도 여성이 남성에게 애칭을 주는 관행은 존재하지만, 살로메의 경우는 이름을 통해 사유적 정체성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릴케를 감정적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재구성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이름은 그 재구성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단지 이름을 불러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이름을 통해,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 참고 자료

더보기
  1.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회고(Looking Back / Lebensrückblick)』(1951)
    • 루 살로메가 자신의 삶을 직접 서술한 회고록. 니체, 파울 레와의 관계, 청혼 거절, 당대 지성들과의 교류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됨.
  2. 뤼디거 자프란스키, 『니체: 철학적 전기(Nietzsche: A Philosophical Biography)』(2001)
    • 루 살로메와의 만남, 바람개비 집 구상, 엘리자베트의 개입 등 주요 사건이 철학적 맥락과 함께 조명됨.
  3. 랄프 프리드먼, 『시인의 삶: 라이너 마리아 릴케(Life of a Poet: Rainer Maria Rilke)』(1996)
    • 릴케와 살로메의 정신적 동반자 관계, 그녀의 문학적 영향력, 결혼 구조의 맥락이 상세히 드러남.
  4. 헬레네 뵘히히,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 자유로울 용기(The Audacity to Be Free)』(2003)
    • 루 살로메의 삶과 글쓰기, 관계 전략, '3의 구조'가 반복되는 사유 방식 등을 집중 조명.
  5. 엘리자베트 푀르스터 니체의 편지 및 회고록(Nachlass)
    • 루 살로메에 대한 강한 반감이 드러나는 기록. 니체의 사후 이미지 왜곡과 루 살로메에 대한 적대의 기원.
  6. 『니체 서간집(Nietzsche's Correspondence)』, 편집: 콜리 & 몬티나리(G. Colli & M. Montinari)
    • 니체가 루 살로메 및 파울 레에게 직접 보낸 편지들을 포함. 감정, 철학, 인간관계의 실시간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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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To Be or...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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