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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연(敢而然)/김영민,"동무와 연인", 배경 지식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 – 놀이로 말하고, 가면으로 산다

by To Be or... Whatever 2025. 5. 17.
운명보다 빠른 걸음으로 운명보다 느리게 사는 방식은 물론 '놀이'이며, 그녀는 놀이의 명수였다. 꼭 그녀만이 아니라, '총명하고 매력적이지만 남자들의 세상과 그 논리에 직수굿하게 응종하기 싦은 여자'는 으레 놀이에 능하게 된다. ..... 카이와의 설명에는, 놀이가 '가면(masque)'을 쓰고 현기증(vertige)을 일으키게 하는 임의의 행위'로 정의되는데, 기이하게도 이것은 루 살로메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 이 현기증의 놀이는 3(삼각형)의 구조, 그 긴장의 아이러니 속에서만 생명을 얻는다. 

김영민, 『 동무와 연인』, 72쪽, 한겨레출판(주),2008


 

 

그녀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 곁에 머문 남자들은 누구보다 깊이 그녀를 사랑했고, 또 상처받았다. 루 살로메는 지적인 욕망이 넘쳐났으며, 말보다는 분위기로 상대를 유혹했고, 결혼보다는 거리를 선택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냈을까? 어떻게 '여자'로 존재하면서도 '여자'로 정의되지 않기를 꿈꿀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그녀가 택한 '놀이'라는 방식에 있다. 그리고 그 놀이 속에는 언제나 가면이 존재했다.

Salome 2 - PICRYL - Public Domain Media Search Engine Public Domain Search

 

놀이란 무엇인가 – 정해진 질서 바깥의 움직임

 

우리는 흔히 '놀이'를 단순한 유희나 여가로 생각하지만, 철학자들은 놀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위험한 방식으로 세계를 흔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호이징하(Johan Huizinga)는 놀이가 모든 문화의 시작이라 주장했으며, 카이와(Roger Caillois)는 '현기증', '가면쓰기', '즉흥성'을 놀이의 본질적 조건이라 규정했다.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이를 더 확장하여 놀이를 죽음의 모의실험, 혹은 자아 해체의 의례로까지 해석했다.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é)에게 놀이란 단순한 즐김이 아니었다.

그것은 질서 바깥에서 존재하기 위한 실존의 선택이었다. 남자들이 그녀에게 '결혼'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의식적으로 '놀이'를 선택했다. 이는 무책임한 유희가 아니라, 정해진 여성성, 정해진 관계, 정해진 감정선에 갇히지 않기 위한 절박한 자기변호와 전략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언제나 '3'이었다 – 둘이 아닌 삼각의 긴장

 

니체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우리가 여기서 다시 만난 것은 어느 별이 도운 것일까요?"  '심오한 너무나 심오한'말이었지만, 루 살로메는 그 순간에도 파울 레(Paul Rée)를 자신의 곁에 두고 있었다. 둘만의 관계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니체와 그녀 사이에는 언제나 '3'이 존재했다. 릴케(Rainer Maria Rilke)와의 관계에서도 그러했고, 남편 안드레아스(Friedrich Carl Andreas)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둘로 닫히는 구조를 철저히 피했다.

 

왜 하필 '셋'이었을까? 둘은 구조다. 연인-연인, 부부-부인, 친구-친구로 규정되는 닫힌 체계다. 그러나 셋은 긴장이다. 불안정하지만 열려있는 가능성이다. 완결되지 않기에 자리를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루 살로메는 그 삼각의 틈새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가면 – '정의되지 않기' 위한 유일한 얼굴

 

루 살로메는 상대에게 자신을 명확히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때로는 지적 자극을 주는 친구였고, 때로는 연인 같은 존재였지만, 정작 아무에게도 고정된 정체성으로 남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가면쓰기'의 본질이다.

철학자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이 언제나 타인의 시선에 맞춰 자기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루 살로메는 자신을 정의하려는 타인의 시선 앞에서 가면을 바꾸는 방식으로 저항했던 것.

그녀의 가면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략이자, 보호막이며, 놀이의 본질적 요소였다. 바흐친(Mikhail Bakhtin)이 말했듯, 가면은 하나의 자아를 가리고 다른 자아를 실험할 수 있는 틈이다. 루 살로메는 그 틈새에서 펼쳐지는 가능성을 사랑했다.

 

 

결론 – 통속을 벗어난 존재, 아이러니의 리듬

니체는 그녀에게 간절히 구애했다. 릴케는 그녀를 경배했고, 파울 레는 그녀를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의 소유물도 되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고, 뮤즈도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삶의 설계자이자, 놀이의 건축가였다.

 

가면을 쓰고, 삼각의 긴장을 유지하며, 사랑과 우정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비껴갔다.

이것이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살아낸 방식이었던 것.

그 방식은 결코 통속적이지 않았고, 아마도 그 이유로 쉽게 해명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남다른(unusual)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루 살로메는 세기의 물결에 맞서 정해진 여자의 운명을 거부했고, 그 대신 놀이와 가면이라는 남다른 사잇길을 통해 자신만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조각했다. 여성이기에 가능했고, 또한 여성이기에 너무 힘들었을, 아 무 나 하지 않는/못하는, '관계의 경계'를 정확히 설정한 실력자였던 것이다. 어떤 아름다운 수식어로도 '정의'되기를 거부했던, 오히려 그 거부를 통해 당대 지식인들의 사유에 오래 각인된 아이러니의 실력.

 

"당신은 나를 알고 싶어 하지만, 나는 언제나 다른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로 남을 수 있는 선택이다."

– 루 살로메, 혹은 그녀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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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To Be or...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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