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강력한 리더십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줄 '영웅'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밀려오는 정보의 파도 속에서 진실과 거짓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다층적인 사회 문제들은 명쾌한 해답을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갈증은 어쩌면 19세기 중반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외쳤던 목소리의 메아리일지도 모릅니다.
1841년 세상에 나온 『영웅 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 the Heroic in History)』은 당시 영국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산업 혁명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전통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정신적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 칼라일은 역사의 진정한 주체는 바로 '영웅적 인간'이며, 인류의 발전은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이 책은 단순한 과거 회고를 넘어서서, 당시 사회의 혼돈에 대한 예리한 진단이자 해법을 제시하는 선언문이었습니다.
칼라일의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됩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단편적으로 이해되거나 오용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연 칼라일이 말한 '영웅'은 누구이며, '영웅 숭배'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리고 그의 사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유효한 질문을 던질까요?
영웅 없는 시대의 비극: 19세기 영국 사회의 '정신적 공허'
칼라일이 『영웅 숭배론』을 집필하던 19세기 중반 영국은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산업 혁명은 눈부신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도시 빈민 문제, 노동자 착취, 전통적 공동체 해체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과학과 이성의 발전은 종교적 신념을 약화시켰고, 계몽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며 구시대의 질서를 해체시켰습니다.
칼라일은 이러한 시대를 '영웅 없는 시대', '환멸의 시대'로 진단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더 이상 숭고한 이상이나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오직 물질적 이득과 계산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그가 "돈을 숭배하는 시대(Mammonism)"라고 명명한 현상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효용과 이윤으로 환원하는 세속주의와 물질주의가 만연하여, 사람들의 정신은 황폐해지고 사회는 도덕적 나침반을 잃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역설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성취한 것의 역사, 즉 보편사는 결국 이 세상에서 활동한 위인(Great Men)들의 역사이다. 이 위대한 자들은 인류의 지도자이자, 모범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일반 대중이 행하고 성취한 모든 것의 창조자였다."
"Universal History, the history of what man has accomplished in this world, is at bottom the History of the Great Men who have worked here. They were the leaders of men, these great ones; the modellers, patterns, and in a wide sense creators, of whatsoever the general mass of men contrived to do or to attain."
(Thomas Carlyle, On Heroes, Hero-Worship, & the Heroic in History, Lecture I, "The Hero as Divinity")
이 인용문은 칼라일 사상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그는 역사를 평범한 다수가 아닌, 소수의 위대한 인물이 이끌어왔다고 믿었으며, 그들을 따르는 것이 인류 발전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칼라일은 낡은 귀족 계급이 더 이상 진정한 리더십을 제공하지 못하고, 새로운 산업 계급은 오직 물질적 이득에만 매몰되어 있다고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진정한 영웅'의 등장이었습니다.
칼라일의 영웅들: '진실함'을 체현한 자들, 그 심원한 울림
칼라일이 말하는 '영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무력이나 권력을 가진 인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 속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통해 '영웅성'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의 강연록인 『영웅 숭배론』은 여섯 가지 유형의 영웅을 제시합니다.
신적 존재로서의 영웅 (Hero as Divinity):
북유럽 신화의 오딘을 통해 원시 부족 사회에서 신을 숭배하는 것이 어떻게 공동체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칼라일은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자신보다 크고 숭고한 존재를 경외하고 따르고자 하는 본능적인 갈망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갈망은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원동력이 되며, 고대 사회에서는 오딘과 같은 신적 존재를 숭배함으로써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을 형성하고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영웅은 단순히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존재로 인식되며, 이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숭배할 대상을 갈망한다는 칼라일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예언자로서의 영웅 (Hero as Prophet):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예로 들어, 영웅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실과 정의를 발견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설파하며 새로운 정신적 질서를 수립하는 자라고 주장합니다. 칼라일은 무함마드를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진정으로 신의 계시를 믿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킨 위대한 예언자로 묘사합니다. 그는 예언자가 바로 눈앞의 물질적 이득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진실'을 꿰뚫어 보고, 그 진실을 통해 타인에게 영감을 주고 행동하게 만드는 진실한 신념의 화신임을 강조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영웅 (Hero as Poet):
이탈리아의 단테와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통해 시인이 어떻게 인간 본성의 심연을 꿰뚫어 보고, 그 시대의 정신을 언어로 형상화하며 인류에게 영원한 진실을 전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칼라일에게 시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가장 깊은 곳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존재입니다. 그들은 현실 너머의 진실과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포착하여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지혜와 영감을 선사하는 진실의 전달자이자, 영혼의 스승이라고 보았습니다.
성직자로서의 영웅 (Hero as Priest):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와 존 녹스(John Knox)를 예로 들며, 영웅은 낡고 부패한 종교적 형태를 부수고, 진정한 신앙과 정신을 재건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칼라일은 성직자 영웅이 당시의 형식적이고 생명력 없는 종교를 비판하고, 인간의 양심과 직접적인 신앙의 회복을 주창함으로써 사람들의 영혼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는 존재라고 역설했습니다. 이들은 도덕적 용기와 신념의 화신으로서, 사회의 정신적 타락에 맞서 진정한 정신적 가치를 수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문인으로서의 영웅 (Hero as Man of Letters):
프랑스의 루소와 독일의 괴테, 영국의 존슨(Samuel Johnson)을 통해 문인이 어떻게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대변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대중의 의식을 변화시키는지 설명합니다. 칼라일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펜의 힘이 더욱 강력해진 시대에, 문인들이 '시대의 진실을 발견하고 기록하며 전파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펜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을 가진 자들로,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시대의 양심이자 선구자 역할을 수행하며 대중의 의식을 계몽하고 새로운 사회적 방향을 제시합니다.
왕으로서의 영웅 (Hero as King):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과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예로 들어, 영웅은 단지 통치자가 아니라, 시대의 혼란 속에서 질서를 확립하고, 국가를 이끌며, 역사적 흐름을 결정짓는 진정한 통치자라고 주장합니다. 칼라일에게 '왕'은 단순히 세습된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는 진실하고 유능한' 통치자를 의미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법과 제도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한 의지와 정신으로 대중을 하나로 묶고 이끄는 존재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칼라일이 제시한 영웅들의 공통점은 바로 **'진실함(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대중을 현혹하는 선동가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진실을 온몸으로 실천하고 그 신념을 통해 사람들을 이끄는 인물들입니다. 칼라일에게 영웅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과,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지닌 존재였습니다. 그는 영웅이 '진실' 그 자체를 체현하고 있기에, 대중은 그들을 의심 없이 숭배하고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위대한 인물은 언제나 번개와 같습니다. 그가 존재했고 활동했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기에 가장 의심할 여지없는 가시적인 사실로 존재합니다. 그의 오류조차도, 만약 있다면,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그의 약점, 그의 어리석음조차도, 우리가 그것들을 분별할 수 있다면, 또한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The great man is always, as we said, the lightning: he is an ocular visible fact, that such a man did exist and act. And he is here as a visible fact, the most indubitable of all. His very errors, if he has made any, are for our instruction. His very weaknesses, his very follies, if we can but discern them, are also for our instruction."
(Thomas Carlyle, On Heroes, Hero-Worship, & the Heroic in History, Lecture IV, "The Hero as Man of Letters")
이 구절에서 칼라일은 영웅의 오류나 약점조차도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고 말하며, 그들의 '진실한 존재' 자체가 역사의 중요한 증거이자 학습의 대상임을 강조합니다.
즉, 영웅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진실을 구현하려 노력했던 인간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칼라일의 이러한 관점은 단순한 지적 논리를 넘어, 인간 영혼의 심층적인 갈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영웅 숭배론』이 시대의 공감을 얻은 이유: 혼란 속 명확한 등불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이 당시 사회에 강력한 반향을 일으키고 대중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핵심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그의 주장이 옳고 그름의 차원을 넘어, 당시 사람들의 깊은 내면의 필요와 시대적 갈증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첫째, 혼돈 속 명확한 '방향성' 제시였습니다.
산업 혁명과 계몽주의의 확산은 전통적인 질서와 가치를 와해시켰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익숙한 틀이 사라지고 새로운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극심한 정신적 불안과 혼란을 겪었습니다. 칼라일은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위대한 영웅'이라는 명확한 푯대와 숭배의 대상을 제시함으로써, 길 잃은 대중에게 강력한 정신적 지주와 삶의 의미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하고 강력한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켰습니다.
둘째, 정신적 공허에 대한 위로와 해결책이었습니다.
칼라일은 당시 만연했던 물질주의와 세속주의('Mammonism')가 인간 정신을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깊은 정신적 허무와 의미 상실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칼라일은 이러한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돈이 아닌 '영웅적 가치'와 '숭고한 신념'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의 외침은 물질적 성공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느끼던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함께 나아가야 할 정신적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셋째, 능동적이고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갈망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전통적인 귀족 계급은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새로운 산업 계층은 이기적인 물질 추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진정으로 사회를 이끌고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강력하고 도덕적인 리더십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었습니다. 칼라일은 바로 그런 '진정한 영웅'의 등장을 주창하며, 단순히 '제도'나 '법'이 아닌 '위대한 개인'의 의지와 행동으로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무력감에 빠져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습니다.
넷째, '진실함'과 '성실함'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강조였습니다.
칼라일은 영웅의 본질이 '진실함(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당시 사회는 위선과 기만, 표리부동한 행태가 만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닌, 내면의 진실한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영웅에 대한 칼라일의 강조는 대중에게 강력한 도덕적 호소력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가식 없는 진정한 리더를 갈망했고, 칼라일의 영웅 개념은 이러한 도덕적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칼라일은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직면한 정신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진단과 함께 강력한 정신적 해법을 제시하려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비록 현대적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을지언정, 당시 대중의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대의 아픔을 직시하고 사람들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갈망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웅 숭배론』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대한 열정적인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영웅 숭배론』의 유산과 현대적 한계: 빛과 그림자
『영웅 숭배론』은 출간 당시 큰 인기를 얻으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혼란한 시대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개인의 나약함 대신 위대한 인물을 통해 희망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열망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상은 리더십과 역사의 역할에 대한 논의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은 현대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체계와 충돌하는 명확한 한계와 불편한 지점들로 인해 주류 담론에서 활발하게 긍정적으로 논의되기는 어렵습니다.
첫째, 민주주의와 평등 사상과의 근본적인 충돌입니다.
현대 사회는 모든 개인의 자율성과 동등한 권리를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시민은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하며,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칼라일은 역사를 소수의 위대한 영웅이 이끌고 대중은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다수의 이성과 판단력을 경시하고, 엘리트 지배를 정당화하는 관점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대립합니다.
둘째, 권위주의 및 전체주의적 오용의 비극적 역사입니다.
칼라일의 '영웅 숭배' 개념은 20세기 초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위대한 지도자' 숭배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된 비극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라일이 이러한 결과를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주장이 특정 개인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대중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논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러한 과거의 경험 때문에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맹목적 추종이나 개인 숭배에 대해 극도로 경계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합니다.
셋째, 복잡성 시대의 단순 해법 한계입니다.
칼라일은 혼란한 시대를 '영웅'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았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들(기후 변화, 경제 불평등, 국제 분쟁, 인공지능 윤리 등)은 특정 개인의 카리스마나 단독적인 리더십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오늘날은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협력, 제도 개선, 시스템 변화,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집단 지성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넷째, 역사 해석의 변화입니다.
현대 역사학은 특정 '위인'이 역사를 단독으로 만들었다는 관점보다는, 사회 구조, 경제 시스템, 문화적 흐름, 그리고 다양한 대중의 역할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상호작용하여 역사를 형성한다는 관점을 취합니다. 칼라일의 '위인사관'은 이러한 현대 역사학의 주류적 시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 숭배론』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책은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리더십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촉발했습니다.
특히, 그가 강조한 '진실함'과 '성실함'이라는 영웅의 덕목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의 리더십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습니다. 그의 사상은 현대 사회의 '불편한 진실', 즉 여전히 존재하는 영웅 갈망 심리나 위기에 처했을 때 강력한 리더를 찾는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데 통찰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영웅 숭배론』: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그의 사상이 지닌 명백한 한계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핵심적인 딜레마들을 예리하게 조명합니다.
위기 시대의 리더십, 그 영원한 갈망
먼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적 갈망에 대한 질문입니다. 팬데믹, 경제 위기,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강력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를 찾습니다. 이는 칼라일이 지적한 인간 본성의 한 단면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본능적 갈망을 어떻게 건설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민주적 가치와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진정성의 가치, 그 시대를 초월한 울림
칼라일이 강조한 **'진실함(Sincerity)'과 '진정성(Authenticity)'**의 가치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SNS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이미지와 포장된 메시지들 속에서, 진짜 신념을 가지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리더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칼라일의 영웅들이 보여준 '내면의 확신과 외면의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은 현대의 리더십에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개인의 역할 vs 시스템의 힘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문제들은 분명 한 개인의 카리스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 불평등, 기술 윤리 같은 문제들은 제도적 접근과 집단 지성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의 순간마다 용기 있는 개인들의 선도적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말랄라 유사프자이 같은 인물들을 보면, 개인의 신념과 행동이 거대한 사회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숭배가 아닌 영감, 추종이 아닌 학습
칼라일의 가장 큰 오류는 '맹목적 숭배'를 주장한 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영웅들의 삶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것은 숭배가 아닌 영감, 추종이 아닌 학습입니다. 단테의 깊은 통찰력, 루터의 용기 있는 개혁 정신, 크롬웰의 현실적 판단력 - 이러한 덕목들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는 '영웅적 자질'들입니다.
민주적 영웅주의를 향하여
결국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칼라일식의 권위적 영웅주의가 아닌, **'민주적 영웅주의'**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진실한 신념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대한 카리스마를 가진 한 명의 영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작은 영역에서라도 영웅적 자질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영웅 없는 시대에서 영웅적 개인들의 시대로
칼라일이 한탄했던 '영웅 없는 시대'는 어쩌면 '영웅적 개인들의 시대'로 전환되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만능의 영웅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며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개인들이 필요합니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은 그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떤 영웅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우리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영웅성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칼라일의 외침이 메아리치던 19세기로부터 거의 2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그 메아리 속에서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아마도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영웅적 정신을 품은 우리 모두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참고 자료 및 출처
- Carlyle, Thomas. On Heroes, Hero-Worship, & the Heroic in History. (1841). Project Gutenberg.
- 추천 한국어 번역본: 칼라일, 토마스. 박상익 역. 『영웅 숭배론』. 길, 2017.
- Mill, John Stuart. Autobiography. (1873). Project Gutenberg.
- 박상익.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 강연, 산업화 혼란기 대중에 희망을 불어넣다." 『주간조선』, 2017년 8월 14일. (칼라일 관련 국내 연구 및 해설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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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To Be or... What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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