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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연(敢而然)/김영민,"동무와 연인", 배경 지식

빅토리아 시대의 견고한 장막을 걷어 올리다: J.S. 밀 『여성의 종속』, 자유와 평등을 향한 선언

by To Be or... Whatever 2025. 6. 17.

9세기 중반, 대영 제국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산업혁명과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내고 있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가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자유주의 사상이 지식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던 '진보의 시대'였죠. 그러나 이 찬란한 발전의 그림자 속에는,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의 삶이 여전히 두텁고 견고한 장막 뒤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허용된 세계는 오직 '가정'이라는 협소한 울타리 안 뿐이었고, 공적 영역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던진 파장은 실로 엄청났습니다.

1869년에 출간된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 』 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철학적 논고를 넘어서, 당대 가장 강력하고 뿌리 깊은 사회적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기념비적인 선언서였습니다. 밀은 이 책을 통해 여성의 권리와 성 평등에 대한 근대적 담론의 토대를 견고히 다졌으며, 이후 수많은 여성 운동가들에게 날카로운 이론적 무기를 제공하여 페미니즘 운동의 중요한 원류로 자리매김하기도 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존 스튜어트 밀 혼자만의 독창적 산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밀 자신도 명확히 밝혔듯이, 이 작품은 그의 지적 동반자이자 아내였던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의 깊은 사상과 열정이 스며든 '공동 저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해리엇 테일러의 예리한 통찰과 불굴의 용기가 없었다면, 이 혁명적인 책은 결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깊이 있는 지적 연대와 상호 존중은 『여성의 종속』에 담긴 사유의 깊이와 설득력을 한층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The philosopher  John Stuart Mill  and Helen Taylor, daughter of Harriet Taylor.

 

그림자 속에 갇힌 삶: 빅토리아 시대 여성의 풍경

『여성의 종속』이 얼마나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주장이었는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당시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는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겹겹이 둘러싸인 구속의 틀 속에서 숨 막히는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John Tenniel,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첫째, '가정의 천사(Angel in the House)'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존재 전체를 짓눌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중산층 여성에게 요구되던 이상적인 여성상은 '정숙하고, 순종적이며, 헌신적인' 아내이자 어머니였습니다. 여성의 역할은 오직 남편을 정성껏 보필하고 가정을 세심하게 돌보는 것으로만 제한되었으며, 사회적 활동이나 지적인 추구는 '여성답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질식할 듯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은 내면의 갈등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야 했습니다. 샬럿 브론테『제인 에어』 속 주인공 제인 에어가 독립적인 사유와 감정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제약 속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야 했던 모습은,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처한 딜레마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또한 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속 여성들이 사랑보다는 결혼을 통해 경제적 생존과 신분 상승을 도모해야 했던 냉혹한 현실은, 당시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한 제한적이고 비정한 선택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심지어 영국의 계관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조차 그의 시 『공주』(The Princess, 1847)에서

"남자는 지식에, 여자는 가정에(Man for the field and woman for the hearth)"

 

라는 구절을 통해 당시의 견고한 젠더 역할을 은연중에 공고히 하기도 했습니다.

 

 

🔍더보기: 알프레드 테니슨의 '계관 시인'과 시 구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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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관 시인(Poet Laureate)이란?

계관 시인(Poet Laureate)은 영국 왕실에서 수여하는 명예로운 칭호로, 국가적인 중요한 행사나 경축일에 맞춰 시를 짓는 임무를 맡은 시인을 의미합니다. 이 칭호는 원래 연금과 함께 주어졌으며, 영국의 문학적 전통과 국가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알프레드 테니슨은 1850년에 계관 시인으로 임명되어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으로 활동했습니다.

2. "Man for the field and woman for the hearth" 구절의 의미

알프레드 테니슨의 서사시 『공주(The Princess)』(1847)**에 나오는 "Man for the field and woman for the hearth"라는 구절은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성 역할 분리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Man for the field": 여기서 'field'는 단순히 농경지나 들판을 넘어, 남성이 활동해야 할 공적인 영역, 즉 외부 세계를 상징합니다. 여기에는 전쟁터, 학문의 장, 정치, 사업, 모험 등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과 지적인 탐구가 포함됩니다. 따라서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field'가 암시하는 넓은 의미의 공적, 지적 활동 영역을 포괄하는 이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성이 외부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며, 경제 활동을 담당해야 한다는 당시의 사회적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 "Woman for the hearth": 'hearth'는 벽난로를 뜻하는 말로, 가정의 중심, 즉 '가정'을 상징합니다. 벽난로는 난방과 요리의 중심지로, 가족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공간이었기에 '가정', '안식처', '내면'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구절은 여성의 역할이 가정 내부, 즉 가족을 돌보고 보살피며 안락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남성의 외부 활동을 보조하고, 가정을 지키는 것이 여성의 본분이라는 당시의 보편적인 인식을 반영합니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가?

이 구절은 당시 사회의 *젠더 분업(gender division of labor)*과 성별 역할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남성은 이성적이고 진취적이며 외부 지향적인 존재로, 여성은 감성적이고 순종적이며 가정 지향적인 존재로 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적 규범과 기대를 충실히 반영합니다.

테니슨이 이 시를 썼을 때, 그는 당대의 보수적인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며, 이는 밀이 『여성의 종속』에서 비판하고자 했던 바로 그 관념이었습니다. 시적인 표현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지식'이나 '가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field'와 'hearth'가 내포하는 문화적, 사회적 의미는 각각 남성의 공적/지적 영역과 여성의 사적/가정적 영역을 명확히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고어(古語)라기보다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 어휘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여성은 법적으로 거의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법적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영미법 체계에서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법적 인격에 완전히 흡수되어 자신의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상실하는 개념인 **'커버처(coverture)'**를 의미합니다.

결혼한 여성, 즉 **'펨 커버트(feme covert)'**는 자신의 재산, 소득, 계약 체결 권리, 심지어 자녀에 대한 권리까지 모두 남편에게 종속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법은 "남편과 아내는 법적으로 한 몸이며, 그 한 몸은 남편이다"라고 명시할 정도로, 여성은 단지 남편의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부당하고 불합리한 상황은 무려 1882년에 기혼여성재산법(Married Women's Property Act)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보기: 커버처(Coverture)와 펨 커버트(feme covert)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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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처(Coverture)**는 중세부터 근대까지 영미법상 존재했던 독특하고 억압적인 법적 원칙입니다. '덮는 것' 또는 '보호하는 것'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으며, 결혼과 동시에 아내의 법적 인격이 남편의 법적 인격 아래로 '덮여서(covered)' 독립적인 법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아내는 남편의 법적 보호를 받는다는 명목 하에, 법정에서 독립적인 권리 행사를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펨 커버트(feme covert)**는 바로 이러한 '커버처' 원칙이 적용되는 **'기혼 여성'**을 지칭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이들은 남편의 법적 보호 아래 놓여 독립적인 법적 권리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반면 미혼 여성이나 과부는 '펨 솔(feme sole)'이라 불리며 제한적이나마 독립적인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커버처는 여성의 경제 활동, 재산 소유, 계약 체결, 소송 제기 등 거의 모든 법적 행위를 남편의 동의나 대리 없이는 불가능하게 만들어,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독립성을 철저히 제약하는 강력한 장벽이었습니다.

 

 

셋째, 여성에게는 교육과 직업 선택의 기회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정규 고등 교육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안에서 최소한의 교양 교육을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로 인해 전문적인 직업 세계로의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소설가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본명 Mary Ann Evans)이 남성 필명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은, 여성 작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경시가 얼마나 뿌리 깊고 완고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여성에게는 단지 감정과 직관만이 허용되고, 지성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처럼 사회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예외적인 여성들조차, 그들의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수많은 사회적 저항과 뿌리 깊은 편견을 감내해야만 했던 시대였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참정권의 부재는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19세기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 제국,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영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참정권에 있어서는 다른 많은 국가들보다 훨씬 뒤처져 있었습니다. 뉴질랜드가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부여한 것과 비교하면, 영국은 1918년에야 30세 이상 여성에게 제한적인 참정권이 부여되었고, 남성과 동등한 21세 참정권은 무려 192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현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1944년), 이탈리아(1945년), 스위스(1971년) 등 유럽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늦은 편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인 1948년 첫 총선부터 남녀에게 동등한 보통 선거권이 주어졌는데, 이는 서구 많은 국가들이 수십 년간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얻어낸 권리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획득했다는 역사적 특수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비교는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즉 서프러제트(Suffragette) 운동이 얼마나 길고 험난한 투쟁의 여정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부각해 주고 있지요. 

By Unknown author - http://www.hastingspress.co.uk/history/sufpix.htm,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70388851

 

🔍더보기: 서프러제트(Suffragette) 운동: '말보다는 행동(Deeds, not words)'으로 역사를 바꾼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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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투표권', '참정권'을 의미하는 'Suffrage'에서 유래한 용어로,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던 급진적인 여성 운동가들을 지칭합니다. 1903년,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와 그의 세 딸(크리스타벨, 실비아, 아델라)은 **여성사회정치연맹(WSPU, 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을 결성하며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강력한 슬로건 아래 전투적인 투쟁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기존의 온건한 참정권 운동(서프러지스트, Suffragist)이 의회 청원이나 평화적 집회에 머물렀다면, 서프러제트들은 보다 전투적이고 과격한 방법을 통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했습니다. 그들의 주요 활동과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개 시위와 의회 방해: 초기에는 공공장소에서의 대규모 시위, 정치인들의 연설 방해, 의회 앞에서의 끈질긴 농성 등을 단행했습니다. 1905년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와 애니 케니가 정치 집회에서 여성 참정권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다 체포된 사건은 WSPU의 전투적 노선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리창 파괴 및 방화: 1912년에는 런던 시내 피카딜리 서커스를 비롯한 주요 거리의 상점 유리창을 파괴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여성들의 불만이 단순히 평화적인 요구를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퍼포먼스였습니다. 또한, 빈 건물에 불을 지르거나 우체통에 인화성 물질을 넣어 우편물을 불태우는 등의 과격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때로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여성 참정권 문제를 전국적인 핵심 이슈로 부각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단식 투쟁과 강제 급식: 체포되어 수감된 서프러제트 활동가들은 옥중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며 정부에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단식 투쟁자들의 건강 악화를 빌미로 이들을 임시 석방했다가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수감하는 악명 높은 **'고양이와 쥐 법(Cat and Mouse Act, 1913)'**을 제정하여 탄압했습니다. 또한, 수감된 여성들에게 억지로 음식을 주입하는 잔인한 방식의 강제 급식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혹한 탄압은 오히려 서프러제트들의 결의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의 비극적 희생: 1913년 엡섬 더비 경마 대회에서 서프러제트 활동가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Emily Wilding Davison)이 국왕의 경주마를 막아서다 말에 치여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서프러제트 운동의 상징적인 순교자로 기억되며, 여성 참정권 투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팽크허스트 모녀의 끈질긴 투쟁: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WSPU의 강력한 카리스마적 리더로서 전투적인 노선을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딸들, 특히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는 WSPU의 조직 비서이자 전략가로서 시위와 행동 계획을 주도했고, 실비아 팽크허스트는 노동계급 여성들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다른 자매들과는 다소 다른 사회주의적 노선을 걷기도 했습니다. 아델라 팽크허스트는 주로 호주에서 참정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들의 끈질기고 희생적인 투쟁은 결국 1918년(30세 이상 여성)과 1928년(남성과 동등한 21세 이상 여성) 영국 여성 참정권 획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여성의 종속』, 관습의 벽을 허무는 밀의 논리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러한 여성의 '종속'이 결코 '자연의 법칙'이 아니며, 오랜 '관습'과 '억압'의 산물에 불과함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여성의 열등함이 '선천적인 자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단지 확증 편향에 불과하다고 통렬히 논박했습니다. 우리가 '인간 본성'에 대해 안다고 여기는 것들은 사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형성된 편견일 뿐이며, 여성의 진정한 잠재력은 자유롭고 평등한 환경에서만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고 힘주어 역설했습니다.

 

밀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억압받아 온 어떤 계급의 본성이 그 계급의 진정한 본성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모든 시대의 오류 중 하나였다. 여성이 실제로 어떤 존재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그들에게 자유로운 선택이 허용될 때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어떤 존재인가는 남성들이 그들을 강제한 결과이지, 자연적인 발현이 아니다."

"But, was there ever any domination which did not appear natural to those who possessed it? As for the other part of the argument, that women are what they are by nature, there is no way of knowing what either they or what men are, but by trying what they are capable of becoming. What they are now, is the effect of the constraint they have been kept under, and not a natural outgrowth."

(John Stuart Mill, The Subjection of Women, Chapter 1)

 

이 문장은 단순히 성차별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개인의 자유와 잠재력을 그 어떤 '전제'나 '편견'으로 예단하는 모든 형태의 억압에 대한 밀의 근본적인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발현할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밀은 자신의 핵심 철학인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관점에서 여성 해방의 필연성을 체계적으로 역설했습니다.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자유주의(Liberalism)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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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Utilitarianism)**는 벤담과 밀을 중심으로 발전한 윤리 및 정치 철학 사조입니다. 어떤 행위나 정책의 옳고 그름을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 즉 사회 전체의 행복이나 쾌락의 총량에 따라 판단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밀은 단순히 양적인 쾌락뿐만 아니라, 정신적 만족이나 지적 성장과 같은 질적인 쾌락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며 공리주의를 한층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자유주의(Liberalism)**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정치 및 사회 사상입니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언론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경제 활동의 자유를 핵심 원리로 삼으며, 법 앞의 평등과 사유재산권 존중 또한 중요하게 여깁니다. 밀은 특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사회 발전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첫째,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의 복속은 사회 전체의 막대한 손실입니다.

 

밀은 여성의 재능과 역량이 사회에서 억압되어 활용되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인적 자원의 낭비이며,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총체적인 행복과 발전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여성 종속의 폐지로부터 기대되는 이득은, 단순히 인류 절반의 생산 능력을 해방함으로써 인류의 부담을 반으로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세기 동안 갇혀 있던 인간 사유의 샘물을 갑자기 자유롭게 함으로써 인류의 도덕적, 지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는 그 어떤 진보적 운동도 보여주지 못했던 방식일 것이다."

"The advantage to be expected from the emancipation of women, is not merely that of halving the burden of the human race by setting free half of its productive capacities, but of suddenly setting free a spring of human thought that has been pent up for centuries; and it will affect the moral and intellectual advancement of mankind, in a way which no progressive movement has ever shown."

(John Stuart Mill, The Subjection of Women, Chapter 4)

 

여성에게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는 두 배의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지적, 도덕적,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실용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했습니다.

 

 

둘째,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여성 해방은 더욱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밀에게 있어 여성은 마땅히 자유로워야 할 존재였죠.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삶의 궤도를 스스로 그어나가고, 내재된 잠재력을 마음껏 꽃 피울 수 있는 '자유'라는 원칙은 성별이라는 생물학적 경계를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그는 확신했습니다.

여성 역시 타인의 의지에 복속당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사고와 선택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자율적 주체라는 점을 밀은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인류의 모든 구성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진보와 행복을 위한 유일무이한 길"이라고 단언하며, 여성에게도 이러한 자유가 온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역설했습니다.

진정한 자유 사회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자신이 가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죠.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한 성(性)이 다른 성에게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규율하는 현재의 사회적 관계 원칙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며, 이제는 인류 개선에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이다."

"The principle which regulates the existing social relations between the two sexes – the legal subordination of one sex to the other – is wrong in itself, and now one of the chief hindrances to human improvement."

(John Stuart Mill, The Subjection of Women, Chapter 1)

 

 

결혼 제도에 대한 혁명적 비판: 지배가 아닌 동반자 관계를 꿈꾸며

 

한걸음 더 나아가 밀은 당시의 불평등한 결혼 제도를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습니다.

그는 남녀가 **법적, 사회적, 지적으로 완전하게 평등한 '동반자 관계(partnership)'**로서의 결혼을 새로운 이상향으로 제시했죠. 기존의 결혼이 여성을 남편의 소유물로 전락시키고, 여성이 가진 자율성과 독립성을 뿌리째 말살하는 잔혹한 법적 구속 장치라고 그는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다음 구절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한 성(性)이 다른 성에게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이며, 이제는 인류 개선에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쪽에는 어떤 권력이나 특권도, 다른 한쪽에는 어떤 무능력도 인정하지 않는 완전한 평등의 원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The legal subordination of one sex to the other is wrong in itself, and now one of the chief hindrances to human improvement; and it ought to be replaced by a principle of perfect equality, admitting no power or privilege on the one side, nor disability on the other."

(John Stuart Mill, The Subjection of Women, Chapter 1)

 

밀이 꿈꾸었던 이상적 결혼관은 "두 사람이 각각 자유로운 존재로 서로를 의지하되, 서로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상호 존중의 관계였습니다. 이는 그가 해리엇 테일러와의 실제 삶에서 구현하고자 애썼던 관계의 모습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 책이 담고 있는 가장 혁신적인 주장 중 하나이기도 했죠.

 

그는 결혼이 강제적인 종속관계가 아닌, 상호 존중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계약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당대 사회에 완전히 새로운 가족 관계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평등한 파트너십의 원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뒤흔든 파장: 논쟁에서 변화의 물결로

『여성의 종속』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 책은 당대 사회 전반에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격렬한 논쟁의 소용돌이를 몰고 왔습니다. 보수적인 지식인들과 종교계 인사들은 밀의 주장을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위험천만한 사상으로 규정하며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죠.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복속』은 19세기말부터 전 세계로 확산된 여성 참정권 운동(Suffragette Movement)에 든든한 이론적, 사상적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존 스튜어트 밀이 단순히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영국 의회 의원으로서 여성 참정권을 지지하는 청원을 직접 제출하고 열정적인 연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실천으로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이 책은 20세기 페미니즘 사상의 발전에 있어 결정적인 이정표 역할을 했으며,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의 핵심 경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활동가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고 재해석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여성의 종속』은 여성의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고, 전 세계 여성 운동의 든든한 이론적 기초를 다지는 데 역사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150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깊은 성찰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15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존 스튜어트 밀과 해리엇 테일러 밀이 그토록 간절히 외쳤던 평등과 자유의 가치가 현재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게 됩니다.

 

분명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평등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억압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성 역할 고정관념, 직장에서 여전히 견고한 유리 천장,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딜레마, 돌봄 노동의 성별 불균형, 미디어가 재생산하는 편향된 젠더 이미지 등은 과거 밀이 신랄하게 비판했던 '관습과 편견'이 21세기에 교묘하게 변주되어 나타나는 현상들일지도 모릅니다.

더 나아가 디지털 혁명의 시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지배하는 새로운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이 직면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불평등과 차별은 없는지 우리는 끊임없이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용기 있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결국 『여성의 종속』은 단순히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문제만을 다룬 역사적 유물이 아닙니다.

이 책은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인간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불합리한 관습과 뿌리깊은 편견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적 사유를 촉구하는 영원한 경종입니다.

 

우리는 과연 '자연스럽다'고 당연시하며 받아들이는 수많은 사회적 현상과 성별 역할들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을까요? 물론, 이 성 역할의 피해자는 남성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자유롭고 공정하며, 모든 구성원의 가능성이 마음껏 꽃 피울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끄는 '지혜로운 비판'으로 승화되고 있을까요?

 

밀의 이 불멸의 저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향해 이러한 묵직한 물음표를 던지며, 지속적인 성찰과 용기 있는 실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150년 전 한 철학자가 품었던 꿈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되었듯이, 지금 우리가 던지는 용기 있는 질문들이 미래 세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Unsplash 의 Nick Fewings

 

📚참고 자료 및 출처:

더보기

밀, 존 스튜어트. 『여성의 종속』. (원제: The Subjection of Women). 각주 또는 본문 내 인용 표기 시 해당 장(Chapter) 번호 명시.

  • 원문 확인처: Project Gutenberg (온라인에서 쉽게 접근 가능한 원문 자료)
  • 추천 한국어 번역본: (이곳에 독자님이 참고하셨거나 추천하는 한국어 번역본의 정보를 기재하시면 좋습니다. 예: 이을상 역, 『여성의 종속』, 책세상, 2011.)
  • 테니슨, 알프레드. 『공주』 (원제: The Princess).
  • 브론테, 샬럿. 『제인 에어』 (원제: Jane Eyre).
  • 오스틴, 제인. 『오만과 편견』 (원제: Pride and Prejudice).
  • 엘리엇, 조지. (본명: 메리 앤 에번스). 소설 및 기타 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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