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제시된 유령 존재론, 애도되지 않은 책임, 도래할 정의의 개념을 중심으로,
작가 한강의 문학과 교차시키며 과거의 구제 가능성을 묻는다. 『소년이 온다』와 『흰』 같은 작품 속에서는 죽은 자들의 귀환,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애도, 정의롭지 못한 과거에 대한 응답이 드러나 있다. 이는 데리다가 말한 “유령들과 함께 살아가기”의 문학적 실천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를 구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유령들 앞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
1. 유령(specter) – 부재와 귀환
데리다에게 유령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서 존재하는 유령은
과거의 억압과 고통,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과제가 현재 속에 되살아나는 방식이다.
『공산당 선언』속 “유럽에 유령이 배회한다”는 말은, 바로 그런 유령적 시간성을 상징한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도 이런 유령이 등장한다.
육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죽은 자들은 여전히 남은 자들의 기억과 죄책감 속에서 말을 걸고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유령은 죽은 자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과거의 목소리이며, 말해지지 않은 고통의 형태다.
2. 책임과 애도 – 이름을 부르기
데리다는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아직 정산을 끝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 '정산되지 않음'을 하나의 애도되지 않은 죽음으로 본다.
마르크스를 잊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를 ‘애도하지 못한 채’ 부채처럼 남겨둔 것이 우리 시대의 현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강의 『흰』역시 바로 이런 애도를 위한 문학이다.
이름 없이 사라진 존재들, 태어나자마자 죽은 생명들, 잊힌 여자들.
주인공은 이들을 기억하며 이름을 지어주고, 그들의 부재를 언어로 복원하려 한다.
말해지지 못한 자를 위해 말하는 것, 바로 그것이 애도이고 책임이다.
3. 도래할 정의 – 아직 오지 않은 응답
데리다는 정의를 “언제나 도래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지금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언제나 미래를 향해 오는 것, 도달해야만 하는 요청이다.
그래서 그는 ‘도래할 정의’(justice to come)라는 표현을 사용해 도달하기 위한 윤리적 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한강은 “과거는 지나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과거가 여전히 현재를 구성하며, 현재가 그 과거에 응답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소년이 온다 』 에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죽음이 어떻게 반복되고,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4. 결론 – 유령들과 함께 살아가기
데리다와 한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하지만, 한 가지 질문을 함께 던진다.
“우리는 과거를 구제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은 단지 기억하거나 추모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말해지지 않은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데리다는 철학적으로, 한강은 문학적으로 그 질문에 응답한다.
이 둘은 유령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유령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묻는다.
말해지지 못한 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도래하지 않은 정의를 기다리는 오늘.
우리는 여전히 유령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그 유령들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응답을 할 수 있는지.
그것이 남은 자의 책임이자 윤리일 것이다.
아니, 그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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