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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연(敢而然)/김영민,"동무와 연인", 배경 지식

'본질 없음'이 곧 세상의 본질. 아도르노

by To Be or... Whatever 2025. 5. 9.

Magda Ehlers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1929394/

 

 

"본질 없음이 곧 세상의 본질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 진리로 여겨온 것들

—사랑, 우정, 정의, 선 같은 것들—은 언제든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

 

아도르노의 철학은 바로 이런 불안정성과 파편성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익숙한 '의미'와 '본질'에 균열을 내고, 우리가 그것들에 얼마나 쉽게 기대고 맹신하는지를 폭로한다.

 

그런데, 20세기 아도르노의 폭로는 21세기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을까?

 

하지만 우리는 정말 '본질 없음'이라는 아도르노의 사유를

제대로 통과해 온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까?

 

아도르노는 본질을 해체함으로써

우리가 보다 유연한 사고와 다원적인 삶의 태도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지만,

현실은 그와는 다르게 흘러왔다.

 

정치적 신념은 여전히 '절대적 정의'로,

종교적 가르침은 '유일한 구원'으로,

개인의 도덕은 '불변의 옳음'으로 군림하며,

아도르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믿음은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막이 아니라,

타인을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하기 쉬우며/쉬웠기에,

이미 그에 따른 비극들을 우리는 늘 확인하며 산다.

 

 

아도르노는 철학자이자 시대의 경고자였다

 

그는 본질을 고정하려는 모든 시도 속에서 폭력과 억압의 씨앗을 보았고,

'철학이란 진리를 해체하고 위선을 드러내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것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 진리조차 불완전할 수 있다는 통찰이다.


 

💡 부정변증법이란 무엇인가?

 

'부정변증법(Negative Dialectics)'은 모든 개념이 세계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군가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그 설명은 결코 그 사람의 전부를 담아내지 못한다. 개념은 언제나 누락과 왜곡을 포함한다.

 

전통적 변증법은,

상반된 개념들—예를 들어 논리적 모순이나 대립되는 주장들—을 종합하여

더 높은 차원의 진리에 이르려한다는 철학적 방식이다.

 

이는 헤겔 철학의 핵심 방식이자, '정-반-합(These–Antithese–Synthese)' 구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는 바로 이 '종합' 자체를 문제 삼는다.

 

“철학은 본질에 도달할 수 없으며, 도달하지 않음으로써만 진실할 수 있다.”
(Die Philosophie kann das Wesen nicht erreichen, sondern nur wahr sein, indem sie es nicht erreicht. / Philosophy cannot reach the essence, but can only be true by not reaching it.) — Negative Dialectics, 1966

 

아도르노에게 있어 개념은 언제나 대상을 누락시키며, 그 누락은 곧 억압이다.

통합은 곧 조화를 가장한 배제이며, 진리는 오히려 그 실패와 균열을 자각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부정변증법은 진리를 완성된 명제로 확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실패하며, 그 실패 속에서만 진실해진다.

 


 

🔍 계몽의 역설: 이성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가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아도르노는 계몽주의의 뿌리 깊은 역설을 지적한다.

계몽은 인간을 무지에서 해방시키려 했지만, 그 이성이 극단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오늘날도 우리는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을 억누르고,

과학이라는 이유로 윤리를 유보한다. 정리되고 분류된 이성적 질서 속에서 인간성은 종종 소거된다.

 

❓ 정말로 우리는 더 인간답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었는가?

 

“진리는 전체가 아니다.” (Die Wahrheit ist das Ganze nicht / Truth is not the whole)
— 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

 

헤겔의 "진리는 전체다"라는 명제(Das Wahre ist das Ganze / The true is the whole)를 비틀어 제시한 이 문장은,

계몽이 어떻게 전체주의의 근거가 되는지를 예리하게 드러낸다.

 

계몽은 해방이 아니라, 전면적 지배와 통제의 논리로 변질되었다.


 

🎨 예술: 본질이 없다는 가장 급진적인 진술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진리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전통적으로 예술이 진리나 신성의 표현 수단으로 여겨졌던 중세적 관점과도 뚜렷이 대비된다.

중세의 회화와 건축은 신의 뜻과 교리를 전달하는 수단이었으며, 미적 형상은 진리의 가시화였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이러한 예술의 '메신저'적 역할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예술이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다.

예술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진리를 부재 속에서 드러내는 균열 그 자체이다.

 

그는 『미학이론』에서 예술을 “부정적으로 구성된 실재에 대한 비언어적 인식”이라 했고,

이는 우리가 ‘균열’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감각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예술은 부정적으로 구성된 실재에 대한 비언어적 인식이다.”
(nichtsprachliche Erkenntnis einer negativ verfassten Wirklichkeit
/ non-linguistic cognition of a negatively constituted reality)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진리를 부재 속에서 드러내는 균열 그 자체이며,

침묵 속에서 현실의 부정성을 감각하게 하는 가장 급진적인 사유의 형식이다.

 

진리가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급진적인 실천이다.

 

예술은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이 품고 있는 틈, 균열, 불협화음을 직시한다.

 

피카소의 왜곡된 형상 카프카의 불안한 문장 쇤베르크의 불협화음

이들은 모두 조화나 완성이 아닌 파편을 제시한다.

 

그 파편은 하나의 본질로 환원될 수 없는 다성적 현실을 드러낸다.

도르노에게 예술은 철학이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의 가장자리, 말해질 수 없는 것의 침묵을 품는다.

“예술은 부정적으로 구성된 실재에 대한 비언어적 인식이다.”
(nichtsprachliche Erkenntnis einer negativ verfassten Wirklichkeit /
non-linguistic cognition of a negatively constituted reality)

— Aesthetic Theory, p. 110

 

예술은 말할 수 없는 것을 감지하게 하고, 진리가 빠져 있는 현실의 틈을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언어가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을 비언어적으로 제시하는 아도르노 예술론의 핵심이다.


 

🧭 맺으며: 본질 없음은 냉소가 아니라 책임이다

 

아도르노의 철학은 절대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부재를 인식하는 데서 비롯되는 윤리적 책임이다.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가 없기에,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며,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본질 없음이란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의미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그 확신,
정말로 ‘본질’인가?
혹은, 내가 쫓고 있는 것은
실은 허상이 아닐까?

 

철학은 삶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삶 자체는 아니다.

 

아도르노는 그 손가락을 꺾으며 말한다.

 

본질은 없다. 그 빈자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라.

 

 

 

 


📚 참고문헌 및 인용

더보기
  • Adorno, Theodor W. Negative Dialectics. Continuum, 1973. (Original: Negative Dialektik, 1966)
  • Adorno, Theodor W., and Max Horkheimer. Dialectic of Enlightenment.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2. (Original: 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
  • Adorno, Theodor W. Aesthetic Theory. Translated by Robert Hullot-Kentor,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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