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철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동성애 혐오는 본능이 아니다. 그것은 철학이며, 구조이며, 권력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것에 맞서는 선언이기 이전에, 철학자란 무엇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성찰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을 '동성애자 철학자'로 구분하려는 시도는, 그를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규정하려는 태도일 수 있다. 그의 철학은 정체성을 말하기보다, 정체성 너머에서 사유하고, 구분 짓는 언어를 넘어서 인간을 다시 말하려는 시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싼 침묵 속에 머물렀고, 그 침묵은 고통이자 저항이자 인간에 대한 깊은 사유였다.
그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내세우지도 감추지도 않았다. 그것은 숨길 수 없는 삶의 일부였지만, 동시에 철학의 전면에 내세울 명패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를 '동성애자 철학자'로 부르기보다, '침묵의 경계에 선 철학자', 혹은 '존재의 윤리를 사유한 인간'이라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이 글은 그의 철학과 삶을 통해, 성정체성이 인간을 나누거나 은폐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이와 다름이 오히려 인간을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철학자는 인간이며, 철학은 인간을 위한 사유여야 한다. 그의 침묵은 철학적 메시지이자 인간에 대한 고백이었다.
이 글은 그 침묵에 귀 기울이려는 시도이며, 그것을 통해 오늘날 다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유의 여정이다.
[1. 혐오의 기원 — 그리스적 에로스와 기독교적 죄악]
고대 그리스에서 에로스는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고양시키는 힘이었다.
아테네의 엘리트 사회에서 통용되던 파이데라스티아(pederastia)는 연장자 남성과 청년 간의 관계로, 교육과 철학적 성장의 한 방식이었다. 플라톤의 『향연』은 이 관계를 단지 육체적 쾌락이 아닌, 진선미를 향한 상승의 시작으로 그렸다.
사랑은 이성 간에만 국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동성 간의 사랑이 더 고귀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플라톤과 그 후계자들은 이러한 사랑을 정신적 성숙의 한 단계로 간주했고, 이는 신체적 접촉을 넘어서는 철학적·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녔다.
반면, 남녀 간의 결혼은 일반적으로 가족의 정치적·경제적 연합을 목적으로 한 제도적 장치였으며, 플라톤 철학에서도 감각적 쾌락에 머무는 이성 간 사랑은 상대적으로 낮은 차원의 에로스로 간주되었다. 이는 당시의 결혼 생활이 개인적 욕망이나 정서적 친밀감보다는 가문, 재산, 사회적 지위 유지를 위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독교의 등장은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전복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욕을 타락한 인간성의 상징으로 보았고, 이는 이후 교부들과 중세 신학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기독교는 인간의 타락이 쾌락의 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으며, 이는 원죄 개념과 결합되어 모든 성적 욕망에 도덕적 의심을 던지는 체계로 발전했다. 특히 번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성행위는 ‘자연법에 어긋나는 죄’로 간주되었고, 이는 인간의 생식 목적에 반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동성 간의 성행위는 신의 창조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단순한 비도덕적 행위가 아니라 신성모독에 가까운 죄악으로 간주되었다. 중세 유럽의 교회법과 세속법은 이를 명시적으로 범죄화했으며,
이 법적 낙인은 오랫동안 유럽 전역에 걸쳐 제도화된 혐오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성애 금기는 종종 정치적 통제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특히 봉건적 권위 체제 하에서 가문의 연속성과 상속 질서는 절대적인 가치였고,
이성애 중심의 결혼 제도는 재산과 권력의 세습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였다. 따라서 번식 불가능한 관계인 동성애는 체제의 안정성과 상충하는 요소로 간주되었으며, 금기시되거나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인구 증가가 필요했던 시기에는
비번식적 성행위를 사치나 낭비로 간주하는 시선이 강했으며, 이는 윤리적 판단이 아닌 생산주의적 사고의 반영이었다.
다시 말해, 동성애에 대한 죄악화는 신학적 명령이자 동시에 정치경제적 필요의 산물이기도 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성의 역사 1권: 앎의 의지』(1976)에서
근대 권력이 생명 자체를 통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성적 규범을 설정하고 통제하는 방식을 분석했다.
그의 '생명정치(biopolitics)' 개념에 따르면,
동성애 억압은 단지 도덕적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인구관리와 사회 통제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장치다.
따라서 동성애는 그 자체로 위험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형식으로 간주되었기에 금기시된 것이다.
[2.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시대적 조건]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에서 태어난 유대계 산업가 집안의 막내였다.
그는 공학을 공부하다가 수학적 논리학과 철학에 심취해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버트런드 러셀과 만나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또한 그는 훗날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앨런 튜링(Alan Turing)과도 간헐적으로 교류했으며, 튜링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강의를 들은 적도 있었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에서 수학과 논리, 언어의 형식에 대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 튜링은 동성애자로서 훗날 영국 정부에 의해 강제적인 호르몬 치료를 받았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의 삶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당시 사회가 동성애자들에게 부과한 억압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무렵 그는 당시 케임브리지에 있던 천재적 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과도 교류했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사유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디랙은 수학적으로 정제된 형식 속에서 물리적 진리를 추구했고,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논리적 형식을 통해 존재의 진리를 탐색했다. 이들의 교류는 물리학과 철학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설명하려 했던 20세기 초 지성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전후에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이하 Tractatus)』를 집필하여 철학계에 깊은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논리와 언어의 관계를 분석한 20세기 철학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책을 출간한 직후 그는 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초등학교 교사, 수도원 노동자, 정원사로 일하며 고립된 삶을 택한다.
이는 단순한 은둔이 아니라,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실존적 시도였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과 사회적 억압 사이에서 깊은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당시 오스트리아와 영국 모두에서 동성애는 형사범죄로 간주되었으며, 그는 철저한 자기검열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의 철학이 '말할 수 없음'을 사유하는 데 깊이 천착했던 것은, 단순한 논리적 탐구가 아니라 이러한 실존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3. Tractatus — 침묵의 철학과 말할 수 없는 것]
Tractatus는 언어와 세계의 논리적 대응을 주장한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며, 언어는 그 사실들을 그리는 그림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가장 유명한 명제 —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 는 이 논리의 구조 바깥을 응시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 침묵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철학의 윤리적 전회다.
그는 언어로 명제화될 수 없는 것들 — 윤리, 종교, 미, 존재의 감각 — 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바로 그 침묵이야말로, 사회가 말하지 못하게 만든 것들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제임스 클라게(James C. Klagge)는 『Wittgenstein in Exile』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사회적 소수자로서 겪었던 침묵과 철학적 침묵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조명하며,
그의 침묵이 단순한 논리적 한계의 표현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조건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성의 역사』에서
현대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으로서 '침묵하게 만드는 힘'을 강조하며, 침묵이 억압의 산물이자 동시에 저항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비트겐슈타인의 침묵은
사회 구조에 의해 제거된 음성들—성적 정체성, 윤리, 내면적 고통—을 둘러싼 사유의 방식으로 읽힌다.
이는 단지 논리학의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정체성 — 동성애적 욕망, 고립, 수치심 — 에 대한 고요한 응시이기도 하다.
[4. 후기 철학 — 언어게임과 존재의 다양성]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철학은 『철학적 탐구』에서 전개된다.
그는 초기의 논리적 대응 이론을 폐기하고, 언어의 의미는 그 사용(use)에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형식 속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행위다. '언어 게임(language game)'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사용 속에서 발생한다는 그의 급진적 전환을 보여준다.
이는 동성애 정체성에 대한 이해에도 철학적 기초를 제공한다.
동성애는 단일한 본질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역사·실천 속에서 구성되는 정체성이다.
어떤 언어 게임은 그것을 범죄화하고, 어떤 언어 게임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바로 이러한 다성적 존재 양식에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5. 동성애 혐오와 현대 사회의 철학적 과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단지 언어의 형식적 조건을 탐구한 논리적 작업이 아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자 했고, 오히려 말할 수 없음을 말하기 위해 철학했다.
그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저항이었으며, 그 고요함은 무지의 표명이 아니라 정체성과 존재를 사유하기 위한 가장 깊은 방식이었다.
오늘날 동성애 혐오는 여전히 구조화되어 있다.
일부 국가는 동성애를 법적으로 금지하거나, 교육 현장에서 배제한다.
미국과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는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적 언설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단지 편견의 문제가 아니라,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 침묵을 강제하는 폭력의 체계 — 에 대한 철학적 저항을 요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을 통해 이 침묵을 응시했다.
그는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을 둘러싼 고통과 존재의 경계에 머물렀다.
그의 철학은 존재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6. 철학자란 누구인가 — 말할 수 없음의 시대에 말하는 자로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말로써 시작해 침묵으로 이어졌고, 그 침묵은 다시 말의 윤리를 요청했다.
그는 언어가 도달하지 못하는 경계에 멈추었으나, 그 멈춤은 철학의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사유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 철학자란 누구인가?
철학자는 단지 개념을 분석하는 존재가 아니다.
철학자는 시대의 언어가 감당하지 못하는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들여다보는 눈을 갖고, 금지된 말의 자리를 응시하는 존재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지 않았다.
그는 그 한계에 머물며, 그 경계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침묵으로 존재의 윤리를 말했다.
그의 철학은 수치와 고독, 말할 수 없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언어를 통해 구조를 드러냈고, 침묵을 통해 윤리를 드러냈다.
오늘날의 철학자도 그러해야 한다.
혐오가 목소리를 높이고, 침묵이 다시 강제되는 이 시대에, 철학은 말할 수 없게 된 것들을 다시 말하게 해야 한다.
철학자는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을 위해 말하는 자이며, 말할 수 없음을 끌어안고 끝내 말하게 만드는 자이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우리에게 남긴 철학의 윤리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 Klagge, J. C. (2011). Wittgenstein in Exile. MIT Press.
- Monk, R. (1990). Ludwig Wittgenstein: The Duty of Genius. Jonathan Cape.
- Rieger, G., Chivers, M. L., & Bailey, J. M. (1996). "Sexual Arousal Patterns of Homophobic Men."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105(1), 75–85.
- Bleibtreu-Ehrenberg, G. (1980). Tabu Homosexualität: Die Geschichte eines Vorurteils. Verlag Rosa Winkel.
- Whitley, B. E., & Ægisdóttir, S. (2000). "The Relationship of Authoritarianism and Related Constructs to Attitudes Toward Homosexuality." Journal of Applied Social Psychology, 30(1), 144–170.
- Durban, E. L. (2022). The Sexual Politics of Empire.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Wittgenstein, L. (1921).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Routledge & Kegan Paul.
- Wittgenstein, L. (1953).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Blackwell.
- Foucault, M. (1976). Histoire de la sexualité I: La volonté de savoir. Gallimard.
- Foucault, M. (1978). The Will to Knowledge: The History of Sexuality Volume 1. Pantheon Books.
🔗 추가 참고 링크
1. 비트겐슈타인의 '침묵'과 정체성
- James C. Klagge의 『Wittgenstein in Exile』 리뷰
Klagge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그의 문화적 맥락과 '망명자'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조명합니다. 이는 그의 철학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리뷰
2. 푸코의 『성의 역사』와 권력의 작동 방식
- 『성의 역사』 제1권 요약
푸코는 성에 대한 담론이 억압이 아닌 권력의 한 형태로 작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성적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합니다.
👉 SparkNotes 요약
3. 구조적 동성애 혐오에 대한 연구
- 구조적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의 사회적 평가
이 연구는 구조적 인종차별과 동성애 혐오가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는 방식에 대해 분석합니다.
👉 PubMed Central 논문
4. 동성애 혐오의 역사적 기원
- Gisela Bleibtreu-Ehrenberg의 『Tabu Homosexualität』
이 책은 동성애 혐오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며, 특히 기독교적 전통과의 관련성을 탐구합니다.
👉 위키피디아 개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편하게 답글로 알려 주세요.
우연을 만드는 창구가 되리라 희망합니다.
— Written by To Be or... Whatever
Walking Miles Without a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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