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자는 때때로, 그 가면이 가면임을 가리키며 걷는다.”
이 문장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 삶, 말하기와 침묵, 사유와 존재 사이의 거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탁월한 은유로 작동한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도, 감추지도 않은 채, 언어의 한계를 조용히 가리키며 걸어간 철학자였다.
🧬 '가면'이라는 은유가 지시하는 것
‘가면을 가리키며 걷는다’는 표현은 두 가지를 동시에 지시한다:
- 나는 가면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 나는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이 침묵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이중 구조는 언뜻 보면 위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자기 존재의 복잡성과 타자성에 대한 윤리적 인식이다. 이는 타자에게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폭력적 요구를 거부하며,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긍정하는 태도다.
🧍♂️ 비트겐슈타인의 삶 — 말할 수 없는 것을 끌어안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동성애자였다. 또한 유대계였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몰락을 체험한 사상가였다. 그의 철학은 '언어'를 다뤘지만, 그의 존재 전체는 말해지지 않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브라이언 핑크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철학자의 삶을 사는 것과, 당신의 동성애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비트겐슈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분명히 그 질문의 침묵 위에 서 있었다.
마이클 모스는 비트겐슈타인을 가리켜 이렇게 평했다:
“망명한 유대인이자 동성애자라는 이중의 주변성 속에 있었던 철학자.”
그의 철학은 언제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난 채, 중심의 언어를 재구성하고, 침묵의 경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해졌다.
📌 철학으로서의 침묵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끝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Tractatus, 7)
이 말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결코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더 깊이 응답했다.
그가 “가면을 가리키며 걸었다”는 것은, 철학자로서의 그의 모든 실천이 자기 자신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철저히 반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마무리하며 —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하는 사람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가면을 썼고, 그 가면의 표면에 언어의 구조와 침묵의 깊이를 새겨넣었다. 그는 침묵을 숨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침묵이 말의 가장 깊은 자리임을 보여주었다.
그의 철학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지만, 그의 철학적 삶은 항상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 가면을 조용히 가리키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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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To Be or... Whatever
Walking Miles Without a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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