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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연(敢而然)/"동무와 연인", 배경 지식

🏡 '실내화'의 시대

by To Be or... Whatever 2025. 4. 18.

Unsplash 의 Paul Rigel

 

— 좀바르트, 짐멜, 벤야민이 본 근대 감각의 전환

우리는 왜 이토록 ‘안’에 있고 싶어졌을까?
실내란 단지 공간이 아니라, 감각과 욕망, 기억의 구조다.


1. 🏠 좀바르트와 ‘실내화된 욕망’ — 사치가 만든 내면 공간

**베르너 좀바르트(Werner Sombart)**는 『사치와 자본주의』(Luxus und Kapitalismus, 1913)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사치(luxury)’와 소비의 감각을 강조한다.

좀바르트는 특히 17세기 이후 유럽 중산계급의 형성과 함께, 소비가 외부적 과시에서 내면적 취향의 구축으로 이동한다고 본다.

📌 핵심 논점:

  • 중세 귀족의 소비는 외부 세계를 향한 전시적 소비였다.
  • 그러나 근대 부르주아의 소비는 실내 공간을 중심으로 한 안락함, 정서적 만족, 사적 감성의 구축으로 이동한다.

“카펫, 커튼, 벽난로는 단지 생활필수가 아니라, 분위기와 감정의 조형이다.”
— 『사치와 자본주의』, 3장

➡ 좀바르트에게 실내란 자본주의 감각이 응축된 장소이며, 욕망이 밖이 아닌 안으로 수렴되는 구조적 전환을 상징한다.
우리는 더 이상 광장에서 소비하지 않는다. 우리는 거실에서 사치한다.


2. 🪞 짐멜과 감각의 차단 — ‘실내’는 신경계의 도피처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은 『대도시와 정신생활』(Die Großstädte und das Geistesleben, 1903)에서,
도시화가 인간 감각에 미치는 영향을 섬세하게 분석했다.

📌 핵심 논점:

  • 대도시의 인간은 끊임없는 자극과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
  • 이러한 과잉은 감각의 마비, 정신적 냉소주의를 불러온다.
  • 인간은 생존을 위해 외부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자기 안으로 퇴각하게 된다.

“대도시는 신경계를 극도로 흥분시키고, 동시에 둔감하게 만든다.”
— 『대도시와 정신생활』, 1절

➡ 짐멜이 보기에 실내는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과잉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방어막이다.
이 방어막 속에서 인간은 감각을 절제하고, 외부 대신 내면의 리듬을 재구성하려 한다.


3. 🎞 벤야민과 이미지의 방 — 실내는 ‘기억과 욕망의 극장’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아케이드 프로젝트』(Das Passagen-Werk, 1927~1940 미완성 유고)에서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와 부르주아의 실내 공간을 철저히 분석하면서, 그것을 근대 감각의 거울로 해석한다.

특히 그는 근대 도시인의 ‘실내’가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정신의 외부화된 무대, 즉 내면의 심리가 가시화되는 장치적 공간이라고 보았다.

🔍 "시간의 심리적 축소판"이란?

벤야민이 말한 실내는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주체가 과거를 저장하고, 그것을 다시 배열하며, 정체성을 구성하는 시간적 장치다.

  • 벽에는 조상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 서재에는 어린 시절 읽은 책이 꽂혀 있으며,
  • 서랍장 안에는 과거의 편지, 향수병, 오래된 손수건이 들어 있다.

이러한 사물의 축적은 단지 수집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을 과거 속에서 찾아가려는 시도,
시간을 공간 안에 응축하려는 시도다.

과거는 이제 더 이상 연대기적 시간이 아니라, 심리적 기억 단위로 배열된 채 실내 속에 자리 잡는다.

그리하여 실내는 ‘시간의 심리적 축소판’, 즉
기억된 과거가 현재의 공간 안에 압축되어 펼쳐지는 장소가 된다.

🎭 "기억과 욕망의 극장"이란?

벤야민은 실내를 연극 무대에 비유한다.
주체는 이 공간 안에서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 추억, 사물들로 자아를 재현(represent)**한다.

  • 방 안 거울 속의 자아는 꾸며진 나,
  • 책장 속의 고전은 자기 교양의 상징,
  • 향기로운 램프와 꽃병은 취향과 감정의 연출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보지 않아도 작동하는 자아의 무대’**다.
즉, 실내는 자아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극장, 기억이 주체에게 무대화되는 장소다.

➡ 이처럼 실내는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연출하고, 욕망을 배열하며, 상실을 장식하는 복합적 장치다.
이것이 벤야민이 말한 “기억과 욕망의 극장”이다.

🪞 "정신의 외부화로서의 실내"란?

이 표현은 벤야민의 다음 문장에서 잘 드러난다:

“실내란 주체가 자기 세계를 외부에 조형하는 방식이다. 거울, 책, 수집품이 그 무대 장치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 N단락

여기서 벤야민은 실내 장식과 구조물이 단지 취향이 아니라,
주체가 자신을 세계에 드러내는 방식, 즉 정신이 외부로 배치된 형태라고 본다.

이를테면,

  • 누군가의 방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이고,
  • 실내 구조를 보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실내란, 단지 안락함을 추구하는 장소가 아니라,
자기 동일성을 인식하고 구성하는 공간, 다시 말해
**“정신의 외부화된 구조”**인 셈이다.


📦 비교 정리

좀바르트 욕망의 내면화, 소비의 공간 『사치와 자본주의』(1913) 안락함, 감성, 사치
짐멜 감각의 차단과 방어 공간 『대도시와 정신생활』(1903) 냉소주의, 신경계, 퇴각
벤야민 이미지와 기억의 연극무대 『아케이드 프로젝트』(1927~40) 몽상, 재현, 수집

✍️ 마무리하며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좀바르트는 실내를 취향의 발화 장소로 보았고,
짐멜은 그것을 감각의 마지막 피난처로 읽었으며,
벤야민은 기억과 이미지가 재배열되는 극장으로 분석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실내화란, 단지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감각과 자아의 구조적 재조정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 디지털 공간은 더 이상 외부가 아니다. 스마트폰은 손안의 실내다.
  • 넷플릭스는 감각의 자동화된 연출,
  • SNS는 자아의 이미지 컬렉션,
  • 우리는 외부를 향해 나가기보다, 내부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인의 실내는 단지 방이 아니라,
정신의 은신처이자 연출된 자아의 장치이자, 기획된 감각의 전시장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실내라는 사유 구조’ 안에 갇혀 살아가는 중인지 모른다.


📚 참고 문헌 및 출처

더보기
  1. Werner Sombart, Luxus und Kapitalismus, 1913
    → 한국어판: 『사치와 자본주의』, 김정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
    ▶ ISBN: 9788932014093
  2. Georg Simmel, Die Großstädte und das Geistesleben, 1903
    → 한국어판: 『대도시와 정신생활』, 이현재 역, 문학동네, 2019
    ▶ ISBN: 9788954656963
  3. Walter Benjamin, Das Passagen-Werk (The Arcades Project), 1927–40
    → 한국어판: 『아케이드 프로젝트』, 김영옥 옮김, 새물결, 2010
    ▶ ISBN: 9788955592512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수록 논문: 동일 역자 번역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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